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제프 하이든 (문단 편집) == 사생활 == 커다란 마찰이나 일화 같은 것은 없고, 오랫동안 고용인 생활을 한 만큼 온화하고 친근한 성품으로 '파파 하이든'이란 별명이 있다. 하지만 교향곡 제45번 '고별'의 에피소드에서 보듯 고용주가 너무한다 싶으면 음악으로 되갚는 [[용자]] 기질도 있고, 의외로 대단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였다. 하이든 사망 200주년이 된 [[2009년]]에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개최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서 고별 교향곡의 4악장이 공식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었는데, 지휘자를 무시하듯 계속 하나둘 빠져나가는 악단원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개그. 이건 하이든 자신이 '''진짜로 초연 때 단원들에게 지시한 퍼포먼스'''다.[* 출판 악보에는 단순히 연주가 끝나는 파트 악보에 마침표만 되어 있고, 하이든 자신은 거기에 독일어로 nichts mehr(더 이상 없음)라고만 적었다. 하지만 현대에 연주할 때도 음반 제작용 스튜디오 녹음이 아닌 한 초연 때처럼 진짜 단원들이 나가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에 따라서 다양하게 연출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지휘자가 빡쳐서 나간다거나(...)] 당시 고용주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도통 '''휴가를 주지 않아서''' 단원들의 마음을 헤아린 하이든이 이렇게 지시했고, 그 결과 휴가를 따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휴가를 따내기 위해 이런 걸 지시한 하이든이나 그걸 보고 휴가를 내준 후작이나 보통 인물은 아니었던 듯. [youtube(vfdZFduvh4w)] ▲ 바렌보임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빈필 신년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하이든의 고별교향곡. 차례차례 빠져나가는데 여기서는 4분 18초부터 보면 된다. 당황스러워하며 가지 말라고 손짓하는 지휘자[* 연기가 전문 배우 뺨친다]와 무시하고 나간 단원이 유머. 5분쯤부터는 청중들도 웃는다. 개그의 절정은 곡이 끝난 7분 이후.[* 거의 마지막쯤에 안 나가고 자리를 지킨 단원의 머리를 인자하고 온화한 웃음을 보이며 쓰다듬어준다. 그런데 그 단원을 포함한 마지막 2명마저도 자리를 비우고 무대를 떠나지만 지휘에 몰두한 지휘자는 그것도 모르고 지휘를 이어가다가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는걸 이상하게 여기며 귀를 기울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악단의 퍼포먼스에 청중이 박수를 치자 뒤를 돌아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까지 보내지만 결국 단원이 모두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해하는 지휘자의 표정이 킬포.~~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결혼 생활은 별로 유쾌하지 않으며 불행했다고 한다. 모르친 백작 집안에서 일할 때 마리아 안나 알로이지아 아폴로니아 켈러란 3년 연상의 여성과 결혼했는데, 불행히도 아내 마리아는 드센 성격과 낭비벽으로 남편과의 갈등이 심했으며 남편의 음악 활동을 이해하지 않고 [[듣보잡]] 취급한 데다가[* 하이든의 친필 악보를 [[냄비받침]] 취급하여 손상시키거나, 심지어는 벽난로에 땔감으로 쓴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때문에 후대의 후대까지 욕을 거하게 먹고 있다.] 결정적으로 [[불임]]이라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식을 가지지 못하여 서로 애정이 급속히 짜게 식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톨릭]]에선 [[이혼]]을 금지하고 있어서[* 현재도 [[가톨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혼인무효'라는 것은 있다. 자세한 것은 [[혼인성사]] 참조.], 결국 부부 관계는 하이든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그 지긋지긋한 생활에 서로 질렸는지, 아예 각자 애인을 두고 살기까지 했다. 특히 하이든은 마리아를 "지옥에서 온 짐승"이라고 부를 정도로 미워했고 나중엔 별거하며 생활비만 보내줄 뿐 아내를 절대 찾지 않았다. 만년에 미사곡 창작에 몰두한 예를 봐도 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것 같은데, 아마 그 때문에 아내가 미워도 종교를 버려가면서까지 이혼을 하는 모험을 하지 않았을지도. '''초상화를 보면 그럭저럭 준수한 외모처럼 보이지만, 당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키도 작고 어렸을 때 앓은 두창 때문에 얼굴에 얽은 자국이 계속 남아 있다고 한다. 체격이 왜소해진 것은 어릴 적부터 도제식으로 음악교육을 받느라 그랬던 것 같은데, 한창 자라나야 할 청소년 시기에 배불리 먹기는커녕 스승들의 온갖 잡일에 시달려야 했다고 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청장년 시기엔 일종의 인후 질환인 비용종과 그로 인한 [[편두통]]에 시달리기도 했고, 종종 작곡 활동에 방해를 주기까지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이든을 탓하기가 뭣한 것이, 당시 작곡가라는 직업은 귀족 혹은 고위 성직자들에게 예속되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위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룰을 스스로 거스르고 [[프리랜서]]를 자처했던 모차르트의 만년 생활은...[* 사실 모차르트는 본인이 재산관리를 잘 못했던 부분도 무시할순 없다.] 이 들은 안정된 주거 환경과 보수를 제공받는 대신, 고용주가 쓰란 대로 곡을 계속 써야 직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작품에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인 스타일의 창작가는 살아남기 힘들었고, 때론 자신의 의지에 반해 별로 애착이 안가는 장르나 편성의 곡을 억지로 써야 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숫자의 곡들을 [[근성]]으로 차근차근 들어보면 나름대로 발전 양상을 추적할 수 있고, 특히 말기에 가면 베토벤 등의 작풍을 예견할 만큼 원숙하고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로 작곡가 당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고증해 재현한 '[[시대연주]]'가 득세하면서 묻혀있던 많은 작품들이 리바이벌되고 있고, 재평가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이든의 손으로 쓰여진 모든 장르에서 고전 형식의 발전과 완성 양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나 베토벤의 혁신 기질 등 후배들의 후광에 눌린다고 해도 여전히 중요성을 잃지 않을 작곡가이기도 하다.''' 듣는 사람에게도 근성이 요구되지만, 전곡을 연주한다는 연주자들에게는 근성 이상의 [[대인군자]]+용자 기질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끈기있는 이들에게 종종 떡밥이 되곤 한다. 특히 100곡을 넘는 교향곡의 경우 많은 이들이 전곡 녹음에 도전했는데, 현재 딱 4명의 지휘자와 관현악단 만이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차례대로 오스트리아 지휘자인 에른스트 메르첸도르퍼와 빈 실내 관현악단, 헝가리 출신의 미국 지휘자인 언털 도라티와 [[필하르모니아 훙가리카]], 역시 헝가리 지휘자인 피셔 아담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하이든 관현악단, 미국 지휘자인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와 슈투트가르트 실내 관현악단. 하지만 메르첸도르퍼의 경우 음반이 너무 극소량+제한적으로 풀려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미국의 동호회인 Musical Heritage Society에서만 발매되었는데, 최근 들어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존재감은 여전히 공기이다. 이외에 Haydn House에서 DVD로 발매한 전곡 음원이 존재한다.] 도라티가 최초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2014부터 [[이탈리아]] 출신의 시대악기 지휘자인 지오반니 안토니니에 의해 하이든 탄생 300주년인 [[2032년]](!) 완성을 목표로 한 교향곡 전곡 녹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에 [[영국]] 출신의 호그우드가 진행하던 교향곡 전곡 계획은 잘 진행되다가 파리 교향곡, 런던 교향곡 등의 주요 교향곡들의 녹음을 남겨두고 무산된 적이 있다.] '''물론 트리오나 현악 4중주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전곡을 녹음한 케이스는 많지 않다. CD 9장 분량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의 피아노 트리오도 보자르 트리오와 반 스베덴 트리오, 아이젠슈타트 하이든 트리오, 트리오 1790의 녹음 정도 밖에 없는 실정이고, 아예 장르 자체가 생소한 CD21장 분량의 바리톤 트리오는 앙상블 에스테르하지의 녹음 외에 전곡 녹음은 시도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친숙한 장르인 현악 사중주도 CD23장에 이른 방대한 양으로 인하여, 타트라이, 에올리안, 코다이, 앙헬레스, 부크베르거 4중주단 정도가 전곡 녹음의 위업을 달성하였고, 시대악기에선 초기 곡을 제외하고 녹음한 페스타티치 4중주단이 전곡녹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기의 위업 중에 도라티, 피셔의 교향곡전집, 유일한 바리톤 트리오 전집을 남긴 앙상블 에스테르하지, 현악 사중주 전집을 남긴 타트라이, 코다이, 페스타티치는 모두 [[헝가리]] 단체란 공통점이 있는데, 아무래도 헝가리 귀족인 에스테르하지가의 음악가였던 만큼 생각 외로 헝가리에서 녹음에 근성을 보인 경향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